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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후기 온라인홀덤 덧글 0 | 조회 1,004 | 2023-10-31 08:10:24
이필창  

버림받은 줄 알았던 디에스는 계곡의 초입에서 유비아를 만났다.

쓸쓸했던 디에스는 유비아와 합류하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그 소소한 행복은 별로 오래가지 못했다.


“디에스.”

“응.”

“바보.”

“미안…….”

유비아가 까마득히 높은 절벽을 보며 중얼대자, 디에스도 까마득히 높은 절벽을 보며 신음했다.

두 사람이 막다른 절벽과 마주한 것도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아무래도 그들은 길을 잃은 것 같았다.

***

집사가 조난당한 그 시각, 이비는 방만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울어 버렸다. 그것도 실컷.

소리 내서 운 게 얼마 만인지, 눈물샘도 영혼도 바삭바삭해진 이비는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후련함과 노곤함, 그리고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반쯤 감긴 눈으로 바다를 보는데, 종소리를 듣고 복도로 나갔던 시온이 거창한 트롤리를 끌며 돌아왔다.

가파른 절벽에 매달리다시피 한 이 별장엔 하인이 다니는 별도의 통로가 없었다. 대신 굴뚝 같은 통로가 있어 거기로 식사가 전달되는 구조였다.

아직 만찬을 즐길 시간은 아니어서 시온이 손수 받아 온 것은 여러 층의 플레이트를 채운 생크림 덩어리, 색색의 여름 과일, 반짝이는 셔벗, 그리고 차가운 음료 등이었다.

이비가 예쁜 다과를 멍하니 바라보자, 시온은 주스부터 따라서 건넸다.

안 그래도 목이 말랐던 이비는 사양하지 않고 시온이 준 것을 쭉 들이켰다. 빈 컵은 시온이 바로 회수했고, 이어서 그는 이비의 양손에 셔벗이 담긴 디저트 볼과 스푼을 쥐여 주었다.

당분도 필요했던 이비는 마침 손에 들어온 셔벗을 스푼으로 찔렀다. 그런데 막 꺼내 온 셔벗은 아직 단단하게 얼어 있어서 이비가 헐겁게 쥔 스푼엔 떠지지 않았다.

그러자 시온이 스푼을 가져가 힘으로 셔벗을 쪼갰고, 그가 그걸 떠올릴 때 이비는 당연한 듯 입을 벌렸다.

그렇게 주는 대로 받아먹길 몇 차례, 잠자코 수발을 받던 이비가 돌연 시온을 째려봤다.


“사람이 말을 피하면 보통 모르는 척해 주지 않나요?”

“아시다시피 사교엔 서툴러서…….”

말 같지도 않은 변명에 이비의 눈이 가늘어지자 시온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두 사람은 바로 직전까지 실컷 울고 실컷 달랬다. 그런데 운 쪽은 뿔이 났고 달랜 쪽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후련하게 울고 다정하게 달래 준 것과 별개로, 시온이 이비를 들쑤셔서 울렸다는 점엔 이견이 없는 탓이었다.

기운이 없어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할 뿐, 직전의 일이 띠꺼웠던 이비는 차가운 셔벗을 입안에서 녹이며 시온을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나른한 머리를 찬찬히 굴려 자신의 패착을 찾았다.


‘나는 조르는 사람한테 약했어…….’

이비는 자신이 억지 부리는 인간을 단호히 쳐낼 줄 안다고 믿었다.

그런데 다시 잘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적당한 진상은 단칼에 잘라 낼지 몰라도, 평균을 훌쩍 상회하는 수준으로 집요한 인간에겐 속절없이 당하는 편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점성술사.

그쪽 시온 라우렐도 경계하는 이비에게 계속 기웃대고 친한 척하더니 종국엔 이비를 집까지 데려가 거기 눌러 살게 만들었다. 야생고양이처럼 예민하던 당시의 이비를 생각하면 어지간히 집요하고 끈질기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저 백작과 아저씨는 태도만 다를 뿐 확실히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밀어내도 좀체 밀려나지 않는 점이, 그런 식으로 옆자리를 야금야금 차지한다는 점은 특히 더.

이비는 같은 수법에 넘어간 게 분해서 다 잠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아까 일은 불가항력이니까 착각하지 마세요.”

“착각이라뇨?”

“백작님이 캐물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백작님이 날 달래 줬다는 식의 착각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캐물은 건 캐물은 거고 달랜 건 달랜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시온의 항변에 이비가 눈을 치뜨자, 시온은 남은 셔벗을 긁어모아 이비의 입에 넣어 주었다. 이비는 그를 노려보면서도 입 앞으로 온 걸 순순히 받아먹었다.


 
오열한 자의 탈력감이란 그러했다. 한껏 울고 나니 만사가 귀찮고 될 대로 돼라 싶어져, 저 백작도 얄밉거나 말거나 오냐 차라리 발닦개로 써 주마 하는 마음이었다.

셔벗을 다 먹은 이비는 트레이를 눈짓했고, 시온이 샌드위치를 집어 오자 다시 입을 오물댔다.

배가 고팠다. 온라인홀덤 울어서 허기진 것도 있지만, 그보단 근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해 온 탓이 더 컸다.

실은 지난 보름간 입맛도 없었다. 그래서 의무에 가깝게 식사하며 먹는 양을 티 안 나게 줄였었는데, 오랜만에 양껏 먹을 마음이 생겼다.

이러니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착각하지 말라는 엄포가 무색하게도, 이비는 저 백작 놈 덕분에 그럭저럭 위안을 얻은 상태였다.

지가 울린 주제에 생색내며 달래 준 건 얄밉지만, 어쨌든 그의 다독임은 다정했다. 그래서 이비는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작이 이렇게 달래는 걸 보면 내가 진짜 최악은 아닌가 보다 하는, 소망에 가까운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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