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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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덧글 0 | 조회 799 | 2023-08-24 04:16:18
장수근  
보봉현. 오봉산채. 유명교의 등장으로 칠파이문과 오대세가는 발칵 뒤집어졌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오봉산채다. 오봉산채는 전에 없이 평화로웠다. 유명교라는 어마무시한 존재 덕분에 녹림의 작은 산채는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도적들도 더 이상 낙양 무가들의 복수를 걱정하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갔다. 가을이 되자 오봉산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오봉십걸들의 무위는 어느새 독심낭인 황요명을 추월했다. 진정한 현급 고수가 된 것이다. 그걸 아는지 황요명의 자세는 더욱 낮아졌다. 연적하의 경우 검이 박도만큼이나 손에 익숙해졌다. 사실 그가 곧 검에 적응할 거란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더구나 그가 익힌 구천세법은 몸을 다루는 무공이라 병기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검이 손에 붙자 연적하는 본격적으로 구천구검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첫눈이 내리던 날. 오봉산채의 천덕꾸러기인 구밀복검 심양각이 삼백 자 법문을 연공하다가 선정(禪靜)에 들었다. 잠깐 그러고 말았으면 별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무려 사흘 만에야 선정에서 깨어났다. 깨어나기 직전 그의 머리 위로 유형화된 금꽃[金花] 세 송이가 피었다. 그것은 도가에서 말하는 삼화취정(三花聚顶)의 경지였다. 정기신이 섞여 하나가 되면 몸 내부에서 탈태환골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금꽃 같은 조각이 머리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걸 삼화취정이라 한다. 심양각은 삼화취정에 들면서 잃었던 내력까지 되찾았다. 마기로 물들었던 그의 내력은 삼백 자 법문을 거쳐 순정화평(純正和平)한 공력으로 거듭났다. 성급 고수였던 심양각의 경우 이제는 가히 절정고수 소리를 들을 만큼 강해졌다. 아무렇게나 유엽도를 휘둘러도 도풍이 일 장(약 3미터)이나 뻗어 갈 정도였다. 심양각이 공력을 되찾자 연적하는 그에게 구천세법의 육 식까지 가르쳤다. 폐인이었던 심양각의 부활로 나락에 떨어진 사람은 황요명이다. 그는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심양각의 눈치를 살폈다. 과거의 심양각이라면 당장 황요명의 팔 하나쯤 잘랐을 것이다. 그러나 심양각은 어찌 된 일인지 황요명을 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열심히 해라’라는 짧은 한 마디를 건넸을 뿐이다. 그제야 황요명은 끊었던 식사를 다시 하고, 부지런히 산행을 다녔다. 새해가 됐다. 오봉십걸은 심양각에게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심양각은 심양각대로 구천세법의 수련에 푹 빠져 추위 속에도 뒷마당에서 살았다. 오후 느지막이 뒷마당을 돌아가던 연적하가 문득 멈춰 섰다. 다 늙은 심양각이 땀을 뻘뻘 흘리며 유엽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연적하는 우두커니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구천세법의 일 식에서 육 식까지 물이 흐르듯 펼쳐졌다. 지난여름까지 박도를 써서 그런지 그의 움직임이 세세하게 느껴진다. 호쾌하면서도 유려한 심양각의 도법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유명한 마두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공자님, 뭘 그렇게 보십니까?” 심양각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그냥, 다 늙은 노인네가 참 열심이다 싶어서.” 스타베팅은 내공을 되찾은 뒤에도 여전히 연적하를 공자님이라 불렀다. 연적하도 심 노인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어 바꾸지 않았다. “흐흐, 어디 저만 그런가요. 오봉십걸은 물론 공자님도 해가 질 때까지 검법을 수련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젊잖아. 살날이 창창하게 남았고. 심 노인은 언제 불려갈지 모르는 사람이 뭘 그렇게 땀을 빼?” “늙은이가 힘이 없다고 구박받으면 더 슬픈 거 모르십니까? 죽기 직전까지 후배들에게 대접받으려면 평소에 땀을 좀 흘려야 합니다.” “어이쿠! 누가 감히 심 노인을 구박한다고 그래. 죄다 심 노인 눈치 보면서 살더구먼.” “바로 그겁니다. 제가 강하니까 제 눈치를 보는 거죠. 제가 골골거렸으면 똥밭에 뒹구는 자갈처럼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을 겁니다.” “특이한 정신세계이야. 참 부러워.” “정신세계야 공자님을 따라갈 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상인과 무관의 돈은 빼앗으시는 분이, 도둑놈들에게는 그 귀한 무공을 그냥 막 퍼 주다시피 가르쳐 주시고.” “돈이야 먹고살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그럼 뭐 굶어 죽어야 돼?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는다는 말이 있잖아. 나도 그런 것뿐이야.” “그럼 그 귀한 무공은 왜 도둑놈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의형제들과 심 노인이 밖에 나가서 칼 맞고 와 봐. 내가 복수해 주러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잖아. 알고 보면 다 나 편하자고 하는 일이야.” “흐흐. 역시 제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특이하십니다. 존경합니다, 공자님.” “존경은 무슨. 거 이상하게 웃지나 마. 이제 눈빛은 제법 신선 같은데 웃음소리가 그래서야 되겠어?” “입에 배서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심 노인이 원하던 벽은 넘은 거야? 그거 때문에 주화입마로 개고생 했잖아.” “헐! 벽을 넘었느냐고요? 이전에 저의 소원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오기조원(五氣朝元, 신체의 오행 즉, 심간위폐비의 기운이 하나로 합해지는 것으로 내단술의 상급 단계)의 경지에 드는 거였습니다. 그거 때문에 안 해 본 짓이 없었지요. 내공에 좋다는 건 뭐든 집어 먹었습니다. 젊어서는 멋모르고 독초도 많이 처먹었지요. 그 부작용으로 삼십 대부터 얼굴에 검버섯이 피었더랬습니다.” “상당히 조숙했었구나.” “그러던 제가 오기조원보다 더 높은 삼화취정을 이룩했습니다. 솔직히 백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이루지 못할 경지지요. 모두 공자님 덕분입니다. 평생 은혜를 갚으며 살겠습니다.” “얼마나 더 산다고 평생이래. 그건 그냥 말로 하고 입 싹 닦겠다는 소리야. 알지?” “푸흐흐” 실소를 흘리던 심양각이 물었다. “그런데 공자님은 검법에 진전이 좀 있으십니까?” “그냥저냥. 심 노인 말대로 했더니 이제 겨우 박도나 검이나 비슷해졌어.” “검으로도 무상의 신위를 보이실 수 있게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뭘 그렇게 띄워. 아주 입에 꿀 바른 사람 같아.”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입에 꿀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구밀복검의 구밀(口蜜)은 심양각이 입에 발린 말을 잘해서 붙은 것이었다. 물론 복검(腹劍)은 ‘흉중에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고. “입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왜 도둑이 됐데?” “칼로 뺏는 게 더 쉬우니까요. 남들 기분 좋게 하는 건 엄청 피곤한 일이거든요.” “야아. 참 대단한 노인네야. 아주 혈기가 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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